아파트 명칭의 브랜드화는 명칭이 거주하는 아파트를 가리키는 기능 이상의,
일종의 ‘구별짓기’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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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명칭 변천사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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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말, 월드 건설은 ‘월드메르디앙’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최초로 브랜드를 적용한 월드메르디앙아파트를 분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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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1998년 수원 영통에 분양한 월드메르디앙아파트다. 시공사명에 ‘최고급/정점’을 뜻하는 외래어 ‘메르디앙’을 결합하고, 전용 BI(Brand Identity) 로고를 제작해서 단지 외벽에 표시했다.
같은 해에 중앙건설은 기존의 ‘중앙아파트’ 대신에 ‘중앙하이츠’라는 순수 고유 브랜드를 전면에 도입했다. 뭔가 고급스럽거나 특별한 느낌을 주는 외래어(영어, 불어, 라틴어 등)을 아파트 이름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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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 브랜드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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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흐름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형 건설사들이 건설사 이름 대신 순수 브랜드만을 런칭, 사용하면서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롯데건설이 1999년에 ‘롯데캐슬’이라는 브랜드를 런칭했고, 삼성물산의 ‘래미안’, 대림산업의 ‘e편한세상’, GS건설의 ‘자이’, 현대건설의 ‘힐스테이트’ 등 건설사명이 없는 순수 브랜드가 잇따라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브랜드 아파트의 시대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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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경기도 용인시의 삼성래미안1차아파트로, 2000년 1월에 ‘래미안’ 브랜드를 적용하여 분양한 최초의 아파트다. 아파트 명칭에는 건설사(시공사)와 브랜드를 함께 사용했지만, 단지 외벽에는 로고 형태의 브랜드만 표시되어 있다.
이러한 아파트 명칭의 브랜드화는 명칭이 그저 내가 거주하는 아파트를 가리키는 기능 이상의 의미를 가지도록 했다. 다른 ‘일반’ 아파트와는 ‘구분되는’ 특별한 가치를 지니는 ‘아파트’처럼 보이게 만들었고, 그런 곳에 거주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을 ‘일반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과 구별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자신의 저서 <구별짓기>에서, 상류 계급이 고급 예술 향유, 특정 주거 방식, 소비 취향 등을 통해 하류 계급과 자신을 ‘예술적인 세련됨과 통속적인 취향으로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구별’한다고 했는데, 아파트의 브랜드화 역시 이러한 ‘구별짓기’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파트 이름에 전문 브랜드를 사용하는 흐름은 2010년대로 넘어가면서 더욱 확산되어 나갔다. 게다가, 2000년에 50%을 넘어섰던 전체 주택 중 아파트의 비율은 이제 약 65%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렇게 아파트가 많다 보니, 브랜드만으로는 ‘구별짓기’의 한계가 드러났다. 브랜드에 덧붙여 그 아파트만의 가치를 강조할 이름이 필요했고, 브랜드의 앞뒤로 단지의 장점을 부각하는 단어를 결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면서 아파트 이름의 길이가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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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펫네임 (Pet Name)을 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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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네임은 제품의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 본래 브랜드 뒤에 덧붙이는 서브 네임(Sub-name) 또는 식별용 애칭을 가리키는 마케팅 용어다. 아파트의 경우에도 역세권, 숲세권, 학군 등 단지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단지 명칭에 펫네임을 붙이기 시작했다.
자연 환경을 강조하는 이름으로는 파크(공원), 포레/포레스트(숲), 리버/오션(강·바다), 레이크(호수), 힐스(언덕·조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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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인천광역시 연수구에 분양한 송도더샵센트럴파크3차아파트다. 이 아파트 이름은 ‘지명(송도)+브랜드(더샵)+펫네임(센트럴)+펫네임(파크)’가 결합된 형태다. 센트럴은 도심이라는 위치를 강조하므로, 센트럴파크는 도심에 있는 공원을 입지적인 강점으로 하는 펫네임이다.
교통이나 위치를 강조하는 펫네임으로는 센트럴(도심) 외에도 메트로(역세권), 시티(대단지), 시티센트럴 등이 있다. 예를 들어, 한강메트로자이아파트는 ‘펫네임(한강)+펫네임(역세권)+브랜드(자이)’가 결합된 형태다.
교육 환경을 강조하는 에듀(학교 인접), 아카데미(학원가 인접) 등도 많이 사용되는 펫네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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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미엄 브랜드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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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부여해서 단지의 가치를 높이려는 이름도 많아졌다. ‘퍼스트’(첫 분양·최고), ‘시그니처’(대표성), ‘프레스티지’(고급화), ‘라클라스·블레스티지(고급 합성어)’ 등이 그 예다.
또한, 아예 일반 브랜드와 구별되는 별도의 프리미엄 브랜드를 론칭하여 아파트 명칭에 붙이기 시작했다. 디에치(현대건설), 아크로(디엘이앤씨), 푸르지오써밋(대우건설), 르엘(롯데건설), 오티에르(포스코이앤씨), 드파인(SK애코플랜프)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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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2021년 서울특별시 서초구에 입주한 반포디에이치라클라스아파트다. ‘지역명(반포)+하이엔드브랜드(디에이치)+펫네임(라클라스)’의 형태로 하이엔드 브랜드와 펫네임을 결합하여 이름을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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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점 길어지는 아파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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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아파트 이름은 외우기 힘들 정도로 길어졌다.
게다가, 시공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공사를 하는 경우에는 브랜드가 두 개, 세 개 들어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경기도 성남시의 위례자연앤래미안e편한세상아파트는 공공 시행사 브랜드 1개와 민간 시공사 브랜드 2개가 결합된 형태의 이름이다. ‘지명(위례)+시행사(자연앤: GH 브랜드)+시공사(래미안: 삼성물산)+시공사(e편한세상: DL이앤씨)’로 이루어진 이름인 것이다.
또한, 앞의 포스팅에서 소개한 자연 친화적인 느낌을 주는 ‘000마을’ 또한 여전히 중요한 마케팅 요소였다. 그렇게 가능한 많은 요소를 아파트 이름에 넣은 사례가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빛가람대방엘리움로얄카운티1차아파트라는 이름이었다. ‘사업지구(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지명(빛가람)+시공사(대방)+브랜드(엘리움)+펫네임(로얄캬운티)’의 형태로 이루어진, 무려 28글자로 현재까지도 가장 많은 글자수를 기록한 이름이다.
이러한 상황을 보다 못한 서울시에서는 2024년 아파트 명칭 간소화를 추진하기도 했다. 지나치게 긴 아파트 이름은 주민간의 소통 애로는 물론, 행정상의 불편과 자원 낭비를 초래하기 때문이다.[1]
앞의 28글자로 최장기록을 기록한 아파트 이름은 현재 공식적으로는 대방엘리움1차아파트라고 사용하고 있다. 대형 건설사들이 여럿 참여하는 초대형 단지들은 이름이 너무 길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단독 펫네임으로 독자 브랜드를 만들어서 사용하기도 한다.
2024년 준공된 서울시 강동구의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85개 동 12,032 세대의 대단지를 건설하는 계획이었고, 이에 참여한 건설사는 현대건설을 주간사로 하여 HDC산업개발, 대우건설, 롯데건설 총 4개사였다. 그렇기에 입지적인 강점을 나타내는 펫네임으로만 해서 올림픽파크포레온아파트라고 이름 지었다. 현대건설, LG건설(GS건설), 쌍용건설이 참여하여 2006년에 준공한 34개 동 3,002 세대의 대단지 서울시 강남구의 도곡렉슬아파트, 현대건설, HDC산업개발, 삼성물산이 참여하여 2018년에 준공한 84개 동 9,510세대의 대단지 서울시 송파구의 헬리오시티아파트 등도 마찬가지 사례였다.
아파트 명칭의 변천사를 보면, 그 시대의 한국 사회의 모습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 뿐만이라 아파트의 이름 또한 한국 사회와 문화를 반영하는 거울인 것이다.
[1] 이에 관해서는 본사의 블로그 <아파트 명칭을 간소화해야 한다>에서 설명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