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주소 체계의 발전 ]
⑱ 고대 한반도의 주소 표기 – 삼국 시대와 통일신라(2)
<그림1> 통일신라 시대의 9주 5소경(출처: 네이버백과)
이 세 개의 주 중에서도 한반도의 중간에 위치하며 한강 유역을 포함하는 지역인 ‘한주(漢州)’는 삼국의 쟁탈전이 가장 치열했던 곳인 만큼, 전세에 따라 주(州)의 이름과 치소(治所: 중심지)가 계속 바뀌었다. 즉 행정구역 상으로는 한강 유역을 가리키지만 그 지명과 구체적인 위치는 계속 바뀌었던 것이다.
<그림2> 진흥왕 때의 신라 영역과 통일신라 영역 비교[1]
<표1> 한주(漢州)의 위치와 명칭의 변화
이러한 지명 변경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지역적인 안정이 이루어진 이후 757년 경덕왕이 중앙집권 강화를 위해 전국의 지명을 두 자리 한자어로 일제히 개편하면서 어느 정도 고정되었다. 계속 명칭이 변경되었던 한강 유역의 지명도 한산주로 정착되었다가 경덕왕 때에 한주(漢州)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통일신라는 ‘주 → 군 → 현’의 의 행정구역 체계를 갖췄는데, 이때의 지명이 대체로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를 거쳐 현재까지 이어지거나 흔적이 남아 있다. 한주에 속한 군의 명칭과 현재의 지역은 아래와 같다.
<표2> 한주(漢州)에 속한 군들의 명칭과 추정 위치
이와 같은 지명의 변화는 지명, 주소의 두 가지 성격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상대적으로 광역 행정구역은 새 국가의 이념을 반영하거나 상징적인 의미를 보여주는 쪽으로 개명이 이루어졌다. 반면에 토착지명이나 사람들이 거주하는 촌락 이름은 보수성이 강하기 때문에[3] 지배하는 국가가 바뀌어도 살아남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다음 글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