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문화권 국가의 주소들 ]

중국 상하이 조계지의 각 자치당국은 자국의 근대적인 행정 체계를 도입했다

1906년 프랑스 조계 당국은 도로명을 일제히 정비하여 도로명 주소를 정착시켜 나갔다

⑭ 최초로 호적 제도를 실시한 국가 – 중국 (1)

한자 문화권에 속한 국가들의 실제 주소 체계는 어떨까? (한자 문화권과 알파벳 문화권의 주소의 차이에 관해서는 본 블로그에 포스팅한 “지번 주소와 도로명 주소”[1]에서 간략하게나마 설명한 바 있다.)

먼저, 중국의 경우를 보자. 중국은 호적제도를 가장 먼저 시행한 국가지만, 부호화된 주소 체계를 갖춘 것은 아니었다. 청나라 때를 보면,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상위에서 하위로 좁혀가는 성(省) → 부(府) → 현(縣) 등의 행정구역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가장 하위 구역이 현이었는데, 현에 속한 지역이 워낙 광활하기 때문에 마을, 촌락 이름 등의 방(坊 – 도시)/향(鄕 – 농촌) → 리(里)의 체계를 사용해서 구분했다.

농촌지역에서는 리(里)와 권(图/圖)-갑(甲)을 혼용했는데, 권-갑은 보가제(保甲制)에서 사용하는 구역 단위다. 보가제는 조선의 오가작통법과 유사한 행정관리 수단으로, 조세, 부역, 징병 등을 위해 가구를 묶어 연대책임을 지게 하는 제도다. 청나라 때의 보가제는 보통 10 가구(保)를 묶어 한 갑(甲)을 만들고, 10-20갑을 묶어 권(圖)으로 편성했다.

청나라 말기인 광서(光緒) 32년 1906년에 작성된 실제 호적을 보자.

<그림1> 청나라 말기의 호적 (출처: www.7788.com)

호적은 가구별로 인구와 소유 자산 등을 조사해서 기록하는 공식 문서다. 그러니, 가구를 특정하기 위해서는 그 가구가 거주하는 주소가 있어야 한다. 위 사진의 호적에서는 오른쪽 첫 줄에 주소가 적혀 있다.

     翼城縣 第二鄉 第五甲 第五號 第十戶
     익성현 제2향 제5자 제5호 제10호

이 주소에는 호가 두 번 나오는데, 갑(甲)에 속하는 가구가 너무 많을 때는 갑의 세부구획으로 호(號)를 사용해 한 번 더 분류하기도 했다. 두번째 호(戶)가 보가제에서 가옥에 부여하는 최종 번호다.

이 호적에는 최하위 행정구역 주소만 적혀 있는데, 지방 정부에서 그 지역 농민을 관리했기 때문이다. 당시 익성현은 산서성 평양부(山西省 平陽府)에 속했기 때문에 전체 주소는 ‘산서성 평양부 익성현 제2향 제5갑 제5호 제10호’가 된다. 산서성 평양부는 현재의 산시성 린펀시 지역이다. 그런데, 이 주소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주소라기보다는 가구별로 관리하는 행정번호에 해당한다.

중국에서는 이러한 행정 주소 뒤에 집의 명칭(주인 성씨)이나 이름을 적어서 개인을 식별하는 주소로 사용했다.

     直隸省 順天府 大興縣 東坊 王氏宅
     직예성 순천부 대흥현 동방 왕씨택

위의 주소는 베이징, 즉 수도권에서 사용한 주소의 예시다. 직예성은 중앙정부가 직접 관할하는 지역으로 시대에 따라 변했지만 주로 베이징, 텐진, 허베이성 일대를 포함했다. 베이징은 공식문서에서는 순천(順天)이라고 했다. 이 주소에서 가장 하위는 동방 왕씨택(왕씨 저택)이 된다.

그러면, 지방에서 사용한 주소 체계는 어떠했을까?

     江南省 蘇州府 吳縣 南鄉 第三圖 第二甲 李宅
     강남성 소주부 오현 남향 제3도 제2자 이택

이 주소에서는 ‘현(縣)’ 아래에 향-권-갑의 하위체계로 내려가고 이택(이씨 저택)이 가장 하위 단계다.

그런데, 공식문서는 이렇게 전체 주소를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행정단위 상 말단에 있는 개인의 주소를 다루는 문서는 지방 정부에서 작성했기 때문에 상위의 행정구역을 기록할 필요가 없었고, 중앙정부에서는 개인의 주소를 특정할 필요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18세기 후반이 되면서 도시가 빠르게 팽창하고 인구가 집중되기 시작했다. 근대적인 체제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중국 국내외의 상황은 쉽지 않았다.
1839년부터 벌어진 영국과의 아편전쟁에 패배했고, 결국 1842년 난징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상하이, 광저우, 샤먼 등 주요 항구를 개항하게 되었다. 영국, 프랑스, 미국, 독일, 러시아 등 서구 열강과 일본이 앞다투어 중국에 진출했고, 상하이, 텐진, 광저우 등의 대도시에 외국인 조계(租界)가 설치되었다. 중국 정부로부터 치외법권을 인정 받는 특별 행정구역이었다.

<그림2> 1932년도 상하이 조계 지도(노란색: 영국 / 주홍색: 프랑스 / 녹색: 미국 / 빨간색: 일본 / 갈색: 이태리)

위의 지도[2]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영국, 프랑스, 미국, 이태리, 그리고 일본이 상하이에 조계를 설치했고, 각자 자치행정기구를 설립했다. 자치당국은 자국의 근대적인 행정 체계를 도입했고, 넓고 직선적인 도로를 깔면서 근대적인 도시 인프라를 구축해나갔다. 1906년 프랑스 조계 당국은 도로명을 일제히 정비하여 도로명 주소를 정착시켜 나갔는데, 도로명은 프랑스식이나 중국식으로 명명하거나 사람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아래 지도는 1930년에 발행한 상하이 프랑스 조계구역의 우편지도[3]로, 넓게 정비한 도로마다 ‘로(路)’를 사용한 한자 이름과 ‘route’, ‘avenu’, ‘road’ 등을 사용한 서양식 이름을 병기하고 있다.

<그림3> 1930년도 상하이 프랑스 조계 우편지도(Postal map of Shanghai)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도로가 관광객들에게도 잘 알려진 우캉로(武康路)다. 현재의 우캉로는 당시 미국인 선교사의 이름을 따 ‘퍼거슨 로(Route Ferguson)’라고 했다. 당시의 주소 체계에 따른다면, 다음과 같이 주소를 적을 것이다.

     Route Ferguson 45, Shanghai, China
     퍼거슨 로 45, 상하이, 차이나

서구식인 하위에서 상위 행정구역으로 올라가는 방식이었고, 도로명과 건물 번호의 순서는 조계지마다 달랐다. 프랑스 조계에서는 대체로 프랑스 식을 사용해서 도로명이 앞에, 건물번호가 뒤에 위치했다.
아래 사진은 현재까지 당시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유명한 우캉맨숀이다.

<그림4> 상하이 프랑스 조계의 대표적인 거리 우캉로와 우캉맨숀(출처: Wikimedia Commons)

(다음 글에서 계속)

[1] “지번 주소와 도로명 주소”, GDSKorea, https://gdskorea.co.kr/지번-주소와-도로명-주소/
[2] Jichisan Shokai, <1932 Map of Shanghai>, Wikimedia Commons.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1932_map_of_Shanghai.jpg
[3] 작자 미상, <Postal map of Shanghai 1930>. http://nla.gov.au/nla.map-brsc7, Wikimedia Commons.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ostal_map_of_Shanghai_193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