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는 언제부터 있었을까? ]

도로의 북쪽과 동쪽의 건물에는 홀수를, 남쪽과 서쪽의 건물에는 짝수 번호를 붙이고, 홀짝 번호의 건물이 마주보면서 같이 가도록 했다

이제 낯선 사람이라도 도로 이름과 번호만 안다면 어느 집이든 찾을 수 있게 되었다

⑬ 현대식 도로명 주소의 등장 – 미국 필라델피아

식민지 시기의 미국에서는 1639년 메사추세츠주를 시작으로 우편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하지만, 주소가 없었기 때문에 지형지물이나 랜드마크를 이용해서 위치를 표기하거나 주소를 마을까지만 써서 우편물을 발송하기도 했다.

<그림1> 1858년 미국에서 사용된 편지 봉투

위 사진은 1858년에 미국 오하이오주의 챈시(Chauncey)시에서 발송한 우편 봉투[1]인데, 수신인의 주소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Mrs. Quinby
     Warwick
     Locust Mount P.O.
     Accomack Co.
     E.Shore Virginia

버지니아주 이스턴쇼어(Eastern Shore) 지역의 아코맥 카운티(Accomack County) 로커스트 마운트 우체국 관할구역(Locust Mount P.O.)인 워릭(Warwick) 마을에 사는 퀸비 씨(Mrs. Quinby)에게 발송한 우편물이다. 위릭(Warwick)은 당시 존재했던 마을 혹은 지역공동체에 해당한다. 우편물을 마을 이름까지만 써서 보내면, 우편배달원이 알아서 배달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인구 증가와 도시 확장, 그리고 우편 수요의 증가에 따라 기존의 방식은 한계에 부딪혔고 체계적인 주소가 필요해졌다. 유럽에서 부분적으로 도입되고 있던 도로명에 주택 번호를 부여하던 방식을 미국에도 도입했는데, 대부분의 도시가 새롭게 건설되는 도시이거나 기존 도시에서 신도시 구역을 확장 건설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주소 체계의 도입에 훨씬 유리했다. 현대식 도로명 주소를 사용한 세계 최초의 도시가 미국의 첫번째 수도였던 필라델피아다.

영국 국왕 찰스 2세는 해군 제독 윌리엄 펜에게 채무가 있었다. 윌리엄 펜이 죽고 나서 찰스 2세는 해군 제독에게 갚아야 할 돈 대신에 제독의 아들 윌리엄 펜(William Penn,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이 같았다)에게 식민지였던 미국 펜실베니아 지역을 하사하면서 영주로 임명했다. 영주이자 식민지 총독의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가 1681년이었다.

<그림2> <윌리엄 펜(William Penn)>, Henry Inman, 1832, Independence National Historical Park 소장

아들 윌리엄 펜은 퀘이커 교도였는데, 당시 영국에서 퀘이커 교는 국교에 반하는 사상으로 법적, 사회적인 박해를 받았다. 윌리엄 펜 역시 수차례 감옥에 갇혔다 풀려났다를 반복했다. 그는 영국을 떠나 종교, 인종,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도시를 미국에 만들기로 결심하고 도시 건설 계획에 착수했다.
1682년 윌리엄 펜은 퀘이커 교도들과 함께 펜실베니아로 갔고, 자유를 찾아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약 20년만인 1700년에 인구가 4,500명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도시가 필라델피아다.

<그림3> 최초의 필라델피아 도시건설계획도(토마스 홀름, 1682)

윌리엄 펜은 토마스 홀름(Thomas Holme)에게 도시 설계를 맡겼는데, 필라델피아 도시 건설 계획은 혁신적이었다. 위의 지도는 1682년에 제작된 필라델피아 도시계획도[2]로, 델라웨어 강과 슈쿨킬 강 사이에 격자형으로 건설하는 것으로 설계되었다. 두 개의 강 사이에 동-서로 주요 도로를 놓고, 남-북 방향의 도로와 교차하도록 했다. 말 그대로 바둑판 모양의 도시가 건설되었다.

<그림4> 1830년 제작된 필라델피아 도시계획도(부분)

1830년 작성된 위의 도시계획도[3]는 이미 건설된 부분과 계획을 함께 담고 있는데, 세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동-서로 난 도로에는 멀베리(Mulberry: 뽕나무), 필버트(Filbert: 헤이즐나무), 체스넛(Chesnut: 밤나무) 등 나무 이름을 붙였다. 자연친화적인 도시로 선전하려는 의도였다. 남-북으로 난 도로에는 노스10, 노스11 등 번호를 붙였다.

건물번호는 처음에는 유럽처럼 말발굽 방식(시계 방향 방식)을 써서 도로의 출발점에서 시작해서 한쪽면을 따라 끝까지 번호를 붙이고, 돌아오면서 반대쪽에 번호를 붙였다.

그런데, 도시가 계속 확장하면서 도로가 계속 길어졌고, 그때마다 반환점이 바뀌니 건물 번호를 새로 부여해야 했다. 1791년 클레멘트 비들(Clement Biddle) 대령은 도시 명부를 작성하면서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도로의 북쪽과 동쪽의 건물에는 홀수를, 남쪽과 서쪽의 건물에는 짝수 번호를 붙이고, 도로를 가운데 두고 홀짝 번호의 건물이 마주보면서 같이 가도록 했다. 이제 낯선 사람이라도 도로 이름과 번호만 안다면 어느 집이든 찾을 수 있게 되었다.[4]

이러한 도로명 주소 체계는 인기를 끌어서 미국의 다른 도시로도 번졌고, 유럽에도 도입되었다.

(다음 글에서 계속)

[1] FRAJOLA, The PhilaMercury Project, Posted 27 Febrary 2025, https://www.philamercury.com/covers.php?id=30127, Accessed 19 June 2025.
[2] Map of the Original City of Philadelphia in 1682 by Thomas Holme.
[3] William Allen, “Plan of the City of Philadelphia and Adjoining Districts, 1830”, Uploaded 20 May 2020, https://waterhistoryphl.org/file/ct003972-jpeg/ Accessed 19 June 2025.
[4] Andrew Heath, “Street Numbering” The Encyclopedia of Greater Philadelphia, Copyright 2018, Rutgers University, https://philadelphiaencyclopedia.org/essays/street-number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