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는 언제부터 있었을까? ]

세력 확대와 식민지를 두고 치열하게 싸운 근대 유럽의 각국은 다른 국가와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최대한의 자원을 동원해야 했다

그 대상은 1차적으로 국민과 토지였다

⑩주택 번호의 전면적인 도입 – 오스트리아 비엔나

근대 국가가 발달하면서 유럽 각국은 세력 확대와 식민지를 두고 치열하게 싸웠다. 다른 국가와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최대한의 자원을 동원해야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했다. 그 대상은 1차적으로 국민과 토지였다.

또한, 산업혁명이 일어나, 시골에서 도시로 수많은 노동자가 모여들었다. 새로운 주택이, 거리가 빠르게 늘어났다. 인구가 증가하고 도시가 급속도로 팽창했다. 예전에는 어느 마을의 누구, 어느 가문의 누구라고만 해도 개인을 식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슷한 건물들이 밀집하고, 건물들 사이로 골목길이 뒤얽힌 도시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주소 없이는 개인을 식별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프랑스의 파리, 영국의 런던, 독일의 베를린 등 유럽 각국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일제히 번지와 도로명을 붙이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주소를 전면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전쟁으로 인한 징병의 필요성 때문이었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공식 후계자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가 이끌고 있었다. 오랜 기간 최강대국의 지위를 누리던 오스트리아는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1740-48)에서 숙적 프로이센과 전쟁을 벌였으나 패배하여 실레시아(Silesia, 현재의 폴란드) 지역을 상실했다.

아래 지도[1]에서 가운데 노란색이 18세기 오스트리아(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영토다. 그 바로 위 실레시아가 프로이센(지도의 Prussia는 영어식 표기) 영토로 표시되어 있다.

<그림1> 1748-1766 시기의 유럽

뒤이어 유럽의 모든 왕국이 참여한 7년 전쟁(1756-63)이 벌어졌고, 오스트리아도 전쟁에 참여했다. 유럽에서뿐만이 아니라 인도, 미국 등 식민지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진 세계대전급 전쟁이었다.

<그림2> 마리아 테레지아 초상화(부분) (Martin van Meytens, 1742, 국립 슬로베니아 미술관 소장)

오스트리아는 빼앗겼던 영토를 되찾지는 못했지만, 내부 결속과 군제 개혁으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건재함을 과시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언제 다시 전쟁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고, 군사력을 강화하려면 징병이 필수적이었다.

그런데, 주요 징병대상자인 농노는 영주의 소유였고, 영주에게는 농사가 더 중요했다. 담당 장교가 마을을 찾아가 징병하려고 해도, 영주가 젊고 건강한 사람은 감추거나 허약한 사람만 내세우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분명히 나라에는 젊은 사람이 넘치는데, 정작 징병 대상자는 찾기 힘들었다. 마을 단위 징병 방식의 한계 때문이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징병 대상자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고안했다. 1770년 군사 징병과 인구 조사를 위한 칙령을 내리면서 징병 담당 장교가 화가, 필경사와 동행하도록 했다. 화가는 모든 주택에 검은 물감으로 번호를 썼고, 필경사는 각 주택에 해당하는 인구를 기록했다.[2]
비엔나의 주택에 번호를 부여하는 사업은 1770년 10월 11일에 시작되어 다음해 4월까지 계속되었다.[3]

<그림3>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건물에 부착된 징병번호

위의 사진은 아직 비엔나의 건물에 남아 있는 주택 번호다.[4] 이러한 번호를 징병번호(Konskriptionsnummer)라고 했고, 당시 주소로 사용되었다. 숫자를 부여한 주소가 등장한 것이었고, 그 주소가 사람의 신원을 입증했다.

징병번호는 몇 차례의 개편을 거쳤는데, 주택이 새로 건설되거나 구역에 변화가 일어나거나 하면 번호 순서가 뒤섞이면서 징병번호로 주택을 찾는 일이 힘들어졌기 때문이었다. 징병번호를 새롭게 부여해야 할 때는, 번호판 속에 예전 징병번호를 함께 써 넣기도 했다.

이처럼 건물에 번호를 부여해서 식별한다는 아이디어가 오스트리아에서 전국적, 전면적으로 시행되기는 했지만, 당시 유럽의 주요 도시들에서도 이미 부분적으로는 건물에 번호를 부여하고 있었다.

(다음 글에서 계속)

[1] P. S. Burton, <Europe 1748-1766>, Wiki Commons, CC BY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5910813
[2] 디어드라 마스크, 『주소 이야기 』, 연아람 옮김, 2021, 민음사, 153-154쪽.
[3] Gallery of House Numbers, https://homepage.univie.ac.at/anton.tantner/housenumbers/exhibition.html
[4]  Conscription Numbers: Vienna, August 3, 2015, forgottengalicia, https://forgottengalicia.com/conscription-numbers-vie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