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의 용도 ]

한자문화권의 시각-공간적인 문자는 선형적인 사고 방식의 알파벳과 대비된다
이러한 공간 중심의 철학이 주소에서도 나타난다

④ 주소의 두 가지 측면 Ⅱ

한자 문화권에서는 주소라는 말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 주소(住所)라는 단어를 한자로 풀어보면 머무르는 곳이라는 뜻이다. 동적인 방향성보다는 정적인 면으로서의 성격이 도드라진다.

문화적으로도 한자는 면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글자를 쓴다. 먼저 가상의 사각형 틀을 설정하고, 면을 분할하여 기본적인 필획인 점과 선을 공간에 어떻게 배치할지 구상해야 한다. 부수나 머리, 받침이 있는 복잡한 한자도 면을 좌우로 나누거나, 상하로 나누거나, 안팎으로 나누어 배치하는 방식으로 면을 구성한다.

한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글은 자음과 모음이 따로 있는 음소 문자이지만, 글자를 쓸 때는 로마자처럼 나열하지 않고 음절단위로 모아 쓴다. 하나의 글자가 하나의 음절을 나타내며, 음절을 나타내는 글자는 초성-중성-종성의 구조로 조합된다. 사각의 틀 안에 면을 분할하여 모아쓰는 방식이며, 이러한 점에서 한자와 마찬가지다. 글자를 인식하고 쓰는 과정에서 시각-공간적인 지각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공간 중심 철학은 고대 인도에서 비롯되어 중국에서 체계화되고 자리잡았다. 중화권에서 도시 공간 구성의 모범으로 삼은 사례가 주나라 수도다.

周禮經圖
<그림1> <주례경도(周禮經圖)> (『주례고공기(周禮考工記)』삽화)

위의 그림 <주례경도(周禮經圖)>는 중국 고대의 관직 제도와 행정 조직, 그리고 이상적인 국가 체제를 기록한 유교 경전인 『주례(周禮)』의 「고공기(考工記)」편에 실린 도면이다.[1] 「고공기」에서는 이상적인 도성(도시) 구성으로, 정방향의 공간을 9방(九坊)으로 나누고, 궁궐이 중앙에 위치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아래의 <도성도(都城図)>는 도성의 구성을 「고공기(考工記)」의 설명에 따라 조금 더 이념적으로 도식화한 도면이다.[2] 중앙에 위치한 궁궐을 표시한 굵은 선의 구역을 하나의 공간(방)으로 잡고, 격자형으로 전후좌우 총 9개의 공간을 구획할 수 있다.

<그림2> 슈지후노(布野修司)의 <도성도(都城図)> 예시

공간을 9방으로 나눈다고 할 때, 9라는 숫자는 중국의 수철학(數哲學)에서 완전성의 상징이자 황제의 숫자라고 한다. 또한, 황제가 위치하는 공간은 중앙이며, 숫자로는 5이고, 이곳이 궁성(宮城)이다. 궁 앞의 구역에는 조정을 배치하고, 뒤에는 시장을 배치한다. 좌우에는 민가를 둔다. (해석에 따라 중앙의 궁성 역시 9개의 공간으로 분할하고, 황제가 거주하는 궁을 중앙에 두기도 한다.) 여기서 핵심은 공간을 분할하고, 분할된 공간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공간 철학은 중국의 모든 도성 구조 설계의 기반이 되었고, 조선을 개국할 때 한성과 경복궁을 건설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헤이안쿄(平安京)[3], 베트남의 탕롱(昇龍)[4]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도성 건설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알파벳의 선형적인 사고 방식과 한자문화권의 공간적인 사고 방식에는 분명 차이가 존재한다. 이 차이가 주소를 보는 시각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인데, 어쨌든 주소는 이 두 가지 성격과 기능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다음 글에서 계속)

[1] 원래 『주례(周禮)』에는 「동관(冬官)」편이 있었으나 유실된 것을 한나라 때 「고공기(考工記)」로 대체했다고 한다. 동일한 내용일 수도 있지만, 만약 없던 내용을 추가한 것이라면, 그만큼 공간 구성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반증이 아닐까.
[2] Shuji Funo(布野修司), 「On Ancient Chinese Ideal City Model described in “Zhou” (『周礼』考工記「匠人営国」条考)」, traverse14(新建築学研究) 2013年, 京都大学建築系教室.
[3] 헤이안쿄(平安京)는 헤이안 시대인 794년에 현재의 일본 쿄토 지역에 건설된 수도다.  1010년 리 타이토 왕이 현재의 하노이 지역에 건설한 베트남 고대 국가의 수도다.
[4] 탕롱(Thang Long)은 1010년 리 타이토 왕이 현재의 하노이 지역에 건설한 베트남 고대 국가의 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