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이 사는 곳은 어디입니까? ]

공간이 관계를 규정하고, 그럼으로써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공간을 부호로 표시한 것이 주소이며, 주소는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② 주소는 정체성이다

건축가 유현준은 그의 저서 『공간인간』에서 ‘호모 스파티움(Homo Spatium: 공간인간)’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호모 스파티움(공간인간)’은 ‘호모 사피엔스(슬기로운 인간)’, ‘호모 에렉투스(직립보행하는 인간)’, ‘호모 파베르(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에 이어 “’공간’을 잘 이용해서 발전하고 진화하는 인간”이라는 의미다. 인간은 공간을 이용하고, 만들고, 확장하면서 진화해 왔다. [1]

불을 이용하면서 모닥불을 중심으로 불빛과 온기가 닿고 맹수로부터 보호 받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다. 동굴에 벽화를 그리면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라 종교적인 공간을 만들고, 벽돌을 쌓아 벽을 세우면서 문명화된 공간을 만들었다.

괴베클리 테페
<그림1> 괴베클리 테페(출처: 위키미디어 / 지도: Google 지도)

위의 사진[2]은 쾨베클리 테페 유적지로, 신석기 시대인 기원전10세기~기원전 9세기 정도에 걸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한다. 거대한 석재들을 원형으로 배치한 구조물로 종교적인 성스러운 ‘공간’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농업 혁명이 막 시작되던 시기, 문명의 여명기에 인간은 이러한 공간을 만들었던 것이다.

불로 만들어진 공간에 수십명의 인간이 모이고, 동굴 안 공간에 수백명의 인간이 모이고, 벽돌로 쌓아올린 건축물에 수만명의 인간이 모였다. 사회가 발전하고, 문명이 발전했다. 나아가 물리적인 공간만이 아니라 가상의 사이버 공간도 만들어 냈다.

Gather_Town
<그림2> 가상 공간에 만들어진 사무실(출처: Gather Town 홈페이지)

가상의 공간에서 일을 하고, 다른 구역으로 찾아가서 사람을 만나고, 회의실에 모여서 회의를 한다. 또 다른 가상의 공간에서는 게임이나 대규모 콘서트를 즐긴다. 현실을 모사했지만, 분명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에 창조된 공간이다.

인간은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은 다시 인간을 만든다. 그렇게 인류는 공간과 함께 공진화(共進化)해 왔다.[3]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관계다. 공간은 그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의 관계를 규정한다. 공간 안 사람과 공간 밖 사람의 관계, 사람과 자연의 관계도 규정한다. 스케일이 더 커지면, 사회 속 사람들의 관계를 규정한다. 건축 공간만이 아니라 지역-지리적인 공간이 관계를 규정한다.

공간이 관계를 규정하고, 그럼으로써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공간을 부호로 표시한 것이 주소다. 주소는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다음 글에서 계속)

[1] 유현준, 『공간인간』, 을유문화사, 2025, 8-9쪽.
[2] Taylan Ozgur Uksal,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G%C3%B6bekli_Tepe_12_November_2022.jpg
[3] 앞의 책, 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