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주소 체계의 발전 ]
㉑ 조선 시대에 토지의 주소는 어떻게 표기했을까?
오가작통법이 가구, 즉 가옥을 중심으로 하는 행정관리 수단이라면, 가옥과 무관한 토지는 어떻게 관리했을까? 조선 시대의 토지 주소와 소유 정보를 기록한 문서를 ‘양안(量案)’이라고 한다. ‘땅을 측량하고 기록한 장부’라는 뜻으로 조세를 부과하기 위해 국가에서 작성한 토지대장이다. 이러한 토지대장의 머리부분에는 총도(總圖)를 그렸는데, 이것을 <어린도(魚鱗圖)>라고 한다.
<그림1> <어린도(魚鱗圖)>
<어린도>는 오늘날의 지적도라고 할 수 있는데, 위의 그림[1] 처럼, 구획된 토지를 그린 모습이 생선 비늘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러면, 토지대장인 양안에는 이 토지들의 주소를 어떻게 표기했을까? 조선 시대에는 ‘천자문 자호방식'(千字文 字號方式)이나 ‘사표방식(四標方式)’을 사용해서 토지의 주소를 표기했다. [2]
<그림2> 「나주군 문평면 양안」(출처: 부평역사박물관)
위의 사진은 조선 시대 혹은 대한 제국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전라남도 나주군 문평면의 양안이다. 먼저, 오른쪽 첫번째 열에는 아래와 같이 적혀 있다.
羅州郡 文平面 五龍里 從來 五龍里 羅恒運
나주군 문평면 오룡리 종래 오룡리 나항운
이 문구는 ‘기존 오룡리에 거주하던 나항운’이라는 뜻으로 해당 토지의 소유주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다. 두번째 열에 토지의 주소가 적혀 있는데, 아래와 같다.
畓 草字 三三三號 답 초자 삼삼삼호
東 鄭時權畓 동 정시권 답
西 羅吉良畓 서 나길량 답
南 鄭達天畓 남 정달천 답
北 尹海祥畓 북 윤해상 답
첫번째 줄의 뜻은 ‘초(草)’자 333호의 논이라는 뜻이다. ‘초’는 천자문(千字文)에 실린 글자에서 가져온 것인데, 이것을 ‘천자문 자호방식’이라고 한다.
천자문 자호방식은 천자문에 수록된 각 글자, 예컨대 천(天), 지(地), 황(黃), 현(玄) 등의 글자를 순서대로 번호 대신 사용하는 방식이다.
천자문에는 중복되는 글자가 없기 때문에 번호처럼 사용할 수 있고, 천 개의 글자를 사용할 수 있으니 최소한 1천번까지 번호를 매길 수 있는 방식이었다.
군이나 면 단위로, 지형에 의해 구획된 토지에 천자문의 글자를 순서대로 붙여 나간다. 이때, 출발점을 어디로 정하는 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었지만, 대체로 관아나 군사적 필요를 위해 설치한 표식(비석 등)에서부터 번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번호를 부여한 토지를 다시 분할해야 하는 경우에는 숫자를 부여해서 구분했다. 이렇게 해서 이 토지의 주소는 ‘전라남도 나주군 문평면 초자 333호’가 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토지의 정확한 위치를 특정할 수 없기 때문에 다음 구절이 적혀 있는 것이다.
위의 사진에서 그 다음에 이어지는 문구는, 동쪽에 정시권의 논, 서쪽에 나길량의 논, 남쪽에 정달천의 논, 북쪽에 윤해상의 논이라는 뜻으로, 동서남북에 접해 있는 토지의 소유주를 표기한 것이다.
이처럼 토지의 동서남북 네 방향에 인접한 지형지물을 표기해서 위치를 설명하는 방식을 ‘사표방식’이라고 한다. 이때 지형지물은 다른 사람의 토지나 도로, 개천, 언덕 등을 이용했다. 위의 사진으로 보는 양안처럼 천자문 자호방식과 사표를 함께 쓰는 경우도 많았다.
<그림3> 1877년에 오상정이 작성한 토지 매매 문서
위의 사진은 조선 시대인 18세기의 토지 매매 문서다.[3]
먼저, 오른쪽 첫번째 열에 이 문서가 어떠한 문서인지 적혀 있다. ‘乾隆四十二年頂十月二十四日趙命說前明文(건륭사십여년정십월이십사일조명렬전명문)’. 건륭(乾隆)은 영조 때의 연호로 건륭 42년은 1777년이다. 명문은 토지 등을 매매할 때 판매자가 구매자에게 작성해 주는 문서를 말한다. 즉, 1777년 10월 24일에 토지 구매자 조명렬에게 작성해 준 문서다.
다음에 주소가 적힌 부분을 보자. 사진에 표시한 부분에 주소가 적혀 있는데, 이 명문에서도 천자문 자호방식과 사표방식 두 가지를 모두 사용하고 있다.
먼저, 사진에서 오른쪽 상자 안에 있는 천자문 자호방식을 사용해서 표기한 주소를 보자.
高陽 富原面 西部 西江坊 新水鐵里 伏在 冬字 沓 十五斗落兄 十五卜 六束 庫
고양 부원면 서부 서강방 신수철리 복재 동자 답 십오두락형 십오복 육속 고
해당 토지의 주소는 ‘고양군 부원면 서부 서강방 신수철리 동자(冬字)’며, 이 동(冬)자가 천자문 자호에 해당한다. 토지의 넓이는 논 15두락 15부 6속이고, 창고가 포함되어 있다. 서부 서강방 신수철리는 현재 서울시 마포구 신수동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또한, 사진에서 왼쪽 상자 안에서는 사표방식의 표기가 적혀 있다.
四標 사표
東 金再興 田 동 김재흥 전
南 高次善 沓 남 고차선 답
西 曹四萬 田 서 조사만 전
北 全斗都 田 庫乙 북 전두도 전 고을
동쪽에는 김재흥의 밭, 남쪽에는 고차선의 논, 서쪽에는 조사만의 밭, 북쪽에는 전두도의 밭과 창고가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지번 주소가 없던 시기에는 인접한 토지나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특정 위치를 식별했는데, 이는 조선에서뿐만이 아니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널리 사용된 방식이었다.
(다음 글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