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주소 체계의 발전 ]

토착지명이나 사람들이 거주하는 촌락 이름은 보수성이 강하기 때문에

지배하는 국가가 바뀌어도 계속 이어져 내려왔다

⑱ 고대 한반도의 주소 표기 – 삼국 시대와 통일신라(2)

한강 하류 지역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다투었던 곳이고, 시대에 따라 그 주인이 바뀌었다. 553년 신라 진흥왕이 한강 하류 지역을 차지하면서 ‘신주(新州)’를 설치했다. ‘신주’라는 명칭은 이후 신라가 삼국 통일 이후, 9주 5소경의 행정체계를 갖추면서 고구려 영토에 설치한 세 개의 새로운 주, 한주(漢州), 삭주(朔州), 명주(溟州)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로도 사용되었다.

9주5소경
<그림1> 통일신라 시대의 9주 5소경(출처: 네이버백과)

이 세 개의 주 중에서도 한반도의 중간에 위치하며 한강 유역을 포함하는 지역인 ‘한주(漢州)’는 삼국의 쟁탈전이 가장 치열했던 곳인 만큼, 전세에 따라 주(州)의 이름과 치소(治所: 중심지)가 계속 바뀌었다. 즉 행정구역 상으로는 한강 유역을 가리키지만 그 지명과 구체적인 위치는 계속 바뀌었던 것이다.

<그림2> 진흥왕 때의 신라 영역과 통일신라 영역 비교[1]
<표1> 한주(漢州)의 위치와 명칭의 변화

이러한 지명 변경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지역적인 안정이 이루어진 이후 757년 경덕왕이 중앙집권 강화를 위해 전국의 지명을 두 자리 한자어로 일제히 개편하면서 어느 정도 고정되었다. 계속 명칭이 변경되었던 한강 유역의 지명도 한산주로 정착되었다가 경덕왕 때에 한주(漢州)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통일신라는 ‘주 → 군 → 현’의 의 행정구역 체계를 갖췄는데, 이때의 지명이 대체로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를 거쳐 현재까지 이어지거나 흔적이 남아 있다. 한주에 속한 군의 명칭과 현재의 지역은 아래와 같다.

<표2> 한주(漢州)에 속한 군들의 명칭과 추정 위치
한주 속군

그런데, 위의 표 오른쪽 열에 표기한 고구려 시대 지명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러한 지명 개명이 그 이전부터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도수희는 그의 저서 『백제언어 연구』에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타난 지명을 비교 조사하여, 백제로부터 한강 하류 지역을 빼앗은 고구려가 행정구역을 재조정하면서 이미 한자식의 지명을 도입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2] 이때, 백제 때부터 사용하던 토착지명을 그대로 이어받기도 했지만, 토착지명을 한자어로 한역한 지명을 개명한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이와 같은 지명의 변화는 지명, 주소의 두 가지 성격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상대적으로 광역 행정구역은 새 국가의 이념을 반영하거나 상징적인 의미를 보여주는 쪽으로 개명이 이루어졌다. 반면에 토착지명이나 사람들이 거주하는 촌락 이름은 보수성이 강하기 때문에[3]  지배하는 국가가 바뀌어도 살아남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다음 글에서 계속)

[1]  도수희, 『백제언어 연구 4』, 제이앤씨, 2007, 63쪽.
[2] 같은 책, 62쪽.
[3] 같은 책, 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