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빅데이터공간분석 ]
지리인구통계 공간분석은 필수적이다
사회구조와 그 현상을 분석할 때 시각적인 공간분석은 매우 효율적이다. 더 나아가 시각적인 공간분석이 아니면 그 현상의 내적 연결성 즉, 패턴을 파악하기 힘들 때도 있다. 공간분석을 위해서는 지리정보시스템(GIS)이 결합되어야 한다. 디지털 지도를 불러오고, 주소정보를 표준화하여 주소단위로 데이터를 정렬하고, SW로 데이터의 연결성과 데이터간의 패턴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잘 만들어진 지도 그래프는 다른 형태의 도표나 그래프가 제시할 수 없는 수많은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이른바 지리인구통계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의 통계적 분류에 근거하여 사람들을 분석하는 기법이다. “누군가가 어디에 사는지를 알게 되면 그 사람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알 수 있다”는 생각에서 유래했다. 지리인구통계의 단순한 이론은 사람과 장소, 또 개인과 그들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 상호관련성이 있다는 것이다. ‘같은 깃털의 새들은 끼리끼리 모여산다’는 속담과 왈도 토블러(Waldo Tobler)의 지리학 제1법칙에 표현되어 있다. ‘모든 것은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가까운 것은 멀리 있는 것보다 더 연관되어 있다.’
최근의 미국사례와 역사적으로 중요했던 몇 가지 사례를 연이어 살펴보기로 하자.
미국 남부인의 신용점수는 왜 그리 낮을까
워싱턴포스트 “의료보험 거부감 의료비 연체 높아”
미국은 철저한 신용사회다. 부동산이나 자가용 구매 등을 위해 대출 신청을 할 경우 가장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신용점수(Credit Score)다. 대출 승인 여부와 이자율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연수입이 많다 해도 신용점수가 낮으면 대출에서 큰 불이익을 받는다. 미국 3대 신용 정보기관인 트랜스유니온과 익스페리언, 에퀴팩스는 신용 조회를 통해 대출심사를 한다. 이들이 공통으로 채택한 신용점수가 바로 페어 아이작 코퍼레이션의 FICO 스코어(FICO Score)다.
워싱턴포스트(WP)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미국 남부지역의 FICO 스코어가 유독 낮았다(그래프 참조). WP에 따르면 이 신용점수 지도는 싱가포르국립대 수미트 아가왈, 국제통화기금(IMF)의 안드레아 프레스비테로,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안드레 실바와 카를로 윅스가 미국인이 보유한 2억3800만개 신용카드의 2019년 데이터를 조사한 결과다.
WP는 남부의 신용점수가 낮은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몇가지 가설을 세웠다. 그중 한가지는 인종이다. 미국 흑인의 5명 중 3명은 남부에 산다. 흑인은 남부 전체 인구의 약 20%를 차지한다. 수세기에 걸친 노예제와 소작농, 인종차별정책, 엘리트교육기관에서의 배제 등으로 남부에 사는 흑인들의 신용이 낮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남부지역만 놓고 봤을 때 흑인이 가장 많이 사는 곳과 가장 적게 사는 지역의 신용점수가 비슷했다. 이들 지역의 신용점수는 비슷한 흑인인구를 가진 남부 이외의 지역들에 비해 크게 낮았다. WP는 “따라서 인종이 어떤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결정적 요인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그 다음 가설은 빈곤 요소였다. 남부지역은 북동부와 중서부, 서부보다 빈곤율이 높았고 소득과 교육수준이 낮았다. 저소득에 고등교육 졸업률이 낮은 지역은 신용점수가 낮은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인구통계와 지리적 특성이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빈곤율과 소득, 교육수준이 요인이라면 애틀랜타나 댈러스처럼 크고 역동적인 남부 대도시의 신용점수가 미국 평균보다 높아야 한다. 하지만 남부 교외지역과 마찬가지로 미국 평균 이하였다. 소득계층 전반에 걸쳐 일반적인 남부인은 북동부와 중서부, 서부에 사는 사람들보다 신용점수가 낮았다.
워싱턴 D.C. 소재 비영리·비당파 싱크탱크인 ‘도시연구소'(Urban Institute)에 따르면 이유는 의료부채였다. 이 단체 경제학자인 브레노 브라가는 “남부인들의 신용점수가 크게 낮은 이유는 가장 일반적인 연체항목인 의료비와 관련돼 있다”며 “남부지역은 미국에서 의료비 연체율이 가장 높다”고 말했다.
도시연구소 신용점수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에서 의료비 연체 비중이 가장 높은 100개 카운티 중 92개 카운티가 남부지역에 있다. 나머지 8개 카운티는 남부와 이웃한 오클라호마와 미주리에 있다. 반면 의료비 연체율이 가장 낮은 100개 카운티 중 82개 카운티는 중서부에 있다. 미네소타주에만 45개 카운티가 있다.
WP는 “의료비를 제때 내는 데 고전하는 지역들은 신용점수가 낮은 지역 분포와 비슷했다”며 “남부의 낮은 신용점수가 오직 의료비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핵심요소임은 분명하다”고 전했다.
그럼 다음 의문은 왜 남부지역의 의료비 연체가 많냐는 점이다. 우선 남부에 사는 사람들의 건강이 다른 지역민보다 안 좋을 가능성이다. 미국보험청(CMS) 자료에 따르면, 남부에 사는 메디케어(노인의료보험제도) 피보험자들의 경우 4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앓는 비율이 다른 지역보다 높았다. 건강이 나쁘면 의료비를 연체할 가능성이 커져 신용점수가 낮아진다.
하지만 건강 하나만으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북동부 여러 주에 사는 피보험자들 역시 각종 만성질환을 앓는 비율이 높았지만 신용점수는 좋았기 때문이다.
그같은 궁금증은 ‘미국의학협회저널'(JAMA)의 최근 분석에서 해소될 수 있었다. 2009~2020년 신용점수 상세데이터를 분석한 JAMA는 “2014년 ‘건강보험개혁법'(ACA, 일명 오바마케어)이 실행된 이후에도 메디케이드(저소득층의료보장제도)를 확대하지 않은 주들에 소재한 저소득 공동체에 의료비 연체가 집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샌프란시스코 소재 의료정책 비영리단체인 ‘KFF’에 따르면 메이케이드를 확대하지 않은 11개주 가운데 8개주가 남부에 있다. 공화당 소속 주지사 대부분은 메디케이드 확대를 주저했는데, 이로 인해 미국 남부와 나머지 지역들 간의 신용점수 격차가 확대된 것.
JAMA는 “메디케이드를 즉시 확대한 주의 경우 의료부채가 2013~2020년 거의 절반 줄었다. 반면 확대하지 않은 주들의 경우 의료부채가 10% 하락하는 데 그쳤다”고 지적했다. ‘공공경제학저널’에 따르면 오바마케어에 등록한 사람들은 2015년에만 약 1140달러의 부채가 줄었다.
도시연구소의 브라가는 “메디케이드가 사람들의 삶과 금융복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준다” 며 “고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고용주들은 신용점수가 낮은 이들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위 글은 2023년2월24일 ‘내일신문’ 8면에 게재된 기사전문으로, 워싱턴포스트 2023년 2월 17일에 그 원문이 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