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계, 혼돈과 질서의 만남 ]
제 1장 불확실성, 무작위, 그리고 새로운 지식의 창조
3. 결정론으로부터 무질서 속의 질서로
이제 무작위의 개념을 통해 해결되고 있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들에 관하여 언급하고자 합니다. 이것들은 우주에 관한 모형설정과 자연법칙들의 형성에 관계되는 것들입니다.
오랫동안 모든 자연현상들은 명확하게 결정론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믿어 왔는데, 가장 대표적 경우를 라플라스Laplace(1812)의 “수학적 악마Mathe-matical demon”라는 사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수학적 연역에 대한 끝없는 능력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으로, 만약 어떤 시점에서 현재의 상태를 일정한 크기로 특정할 수 있다면, 결론적으로 앞으로 전개될 모든 미래의 사건들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미 언급한 바 있는 이 결정론은 태고적부터 연유하는 인류사유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개념적으로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넓은 의미로, 이것은 외부세계를 인식하고 서술하기 위한 도구로서 형식논리학의 힘과 전능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을 의미합니다. 한편 좁은 의미로 볼 때, 이것은 세상의 모든 현상이나 사건들은 인과율에 의하여 설명된다는 신념을 의미합니다. 더욱이 이것은, 적어도 원론적으로 볼 때, 세상의 현상들을 추론할 수 있는 법칙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쯤 결정론적 자연법칙의 탐구가 더이상 논리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우연성 메커니즘Chance mechanism에 기반을 둔 모형들을 대체방안으로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라플라스의 수학적 악마라는 사유에는 또 다른 면이 있는데, 이것은 시스템의 초기조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측정오차로 인해 초기조건을 정확히(즉, 오차 없이) 알기 힘들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러한 경우, 초기조건의 약 간의 차이가 시스템의 미래상태에 대해 상당히 다른 예측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1961년 로렌츠의 일기패턴에 관한 것으로, 이 일기패턴은 거의 같은 시점에서 출발하여 시간별로 작성되었습니다. <그림1-2>는 글라익James Gleick의 혼돈Chaos에 관한 저서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이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똑같은 법칙 하에서, 측정치 .506217과 이를 반올림한 값 .506의 두 가지 초기조건으로 출발했을 때, 일기패턴이 점점 더 벌어져서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초기조건에 민감하게 의존하는 현상을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라고 합니다. 즉, 오늘 베이징의 공기를 흩어 놓은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다음달에는 워싱턴에 폭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서로 다른 세 개의 연구분야에서 세 가지의 중요한 발전이 있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우연성이 자연 속에 내재한다는 전제에 기초한 것들입니다.
쿼틀레Adolph Quetlet(1869)는 사회 및 생물학적 현상들을 기술하 기 위하여 확률개념을 사용하였습니다. 멘델Gregor Mendel(1870)은 주사위를 굴리는 것과 같은 간단한 우연성 메커니즘을 통해 그의 유전법칙을 완성시켰습니다. 볼츠만Boltzman(1866)은 이론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이론 중의 하나인 열역학 제2법칙에 통계적 해석을 부여하였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사람들에 의하여 제시된 아이디어들은 과연 혁명적인 것들이었습니다. 비록 그것들이 곧바로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지만, 지난 세기동안 통계적 개념을 이용한 모든 분야는 빠른 진보를 하였습니다.
물리학에서는 천문학분야에서 발생하는 측정치들의 오차를 처리하기 위하여 통계적 사고가 도입되었습니다. 동일한 조건에서 반복적으로 측정한 관측치들 이 매번 다르다는 사실을 **갈릴레오 Galileo(1564-1642)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습니다.
약 200년이 지난 후, 가우스Gauss(1777-1855)는 측정치에 존재하는 오차에 관한 우연성을 연구하였으며, 미지의 값을 추정하기 위하여 관측치들을 적절히 결합하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그 후, 초기조건에서의 불확실성이나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외부 요인들의 효과를 조정하기 위하여 통계적 사고가 이용되었지만, 물리학의 기본법칙은 여전히 결정론을 가정하고 있었습니다.
중요한 근본적인 변화는 기본적인 법칙들이 확률적으로 표현됨으로써 이루어졌는데, 특히 미시적 수준에서 일어나는 기본입자들의 행태를 확률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무작위적 행태는 “많은 사물의 통상적인 기능에 내재되어 있는 필요 불가결한 부분”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주어진 시스템들의 행태를 설명하기 위하여 통계적 모형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예로는 방사능에 의하여 발생하는 불꽃을 설명한 브라운 운동이나, 하이젠베르그 Heisenberg의 불확실성 원리, 맥스웰Maxwell의 같은 질량을 가진 분자들의 속도분배이론 등이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오늘날의 양자역학을 가능케 한 결 과들입니다. 이러한 사고의 변화는 유명한 물리학자인 본Max Born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표현되었습니다.
또 다른 유명한 물리학자인 에딩톤A.S.Edington은 한 단계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결정론적 법칙을 대신하는 통계적 법칙들의 개념은 많은 과학자들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하였는데, 특히 금세기 가장 뛰어난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은 그의 생애 마지막까지 다음과 같은 말로 결정론을 옹호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보즈S.N.Bose에 의하여 제시된 분자의 확률적 행동을 받아들인 것은 놀라운 일이었으며, 그것은 결국 보즈-아인슈타인 이론을 탄생시켰습니다.
비록 단일체 수준(개별 원자 또는 분자의 행동과 같은)에서는 불확실성이 존재하지만, 많은 단일체들을 합한 집단의 평균적 행태는 상당히 안정적이라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즉 “무질서 속의 질서”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확률이론에는 그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大數의 法則Law of large numbers”이라는 명제가 있습니다. 이 명제의 내용은 단일체의 숫자가 증가할수록 단일체들의 평균적 결과 들에서 나타나는 불확실성은 점점 작아지며, 그 결과 한 시스템은 전체적으로 볼 때 거의 결정론적 현상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다수는 안전을 보장한다”라는 유명한 격언은 바로 이러한 강력한 이론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 갈릴레오 Galileo(1564-1642)
갈릴레오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는 이탈리아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 물리학자로서 현대 실험과학의 창시자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가 발견한 것에는 진자pendulum의 법칙, 달의 분화구, 태양의 흑점, 목성의 4개 위성, 망원경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발견을 통하여 갈릴레오는, 지구가 자전하면서 태양주위를 운행한다는 코페르니쿠스 Nicholaus Copernicus의 지동설이 사실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의 가르침과는 반대되는 것이어서 갈릴레오는 종교재판소로부터 그의 견해를 철회하도록 강요 받았습니다. 흥미롭게도, 몇 년 전에 현재의 교황은 그가 임명한 한 위원회에서 제출한 보고서에 근거하여 갈릴레오에게 부과됐던 죄과를 용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