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계, 혼돈과 질서의 만남 ]
제 1장 불확실성, 무작위 그리고 새로운 지식의 창조
집이 돌로 지어 지듯이
과학은 사실의 기초위에 이룩된다.
그러나 돌무더기가 집이 아니듯이
사실만을 모아 놓은 것이 과학은 아니다.
– 뿌앙까레 Jules Henri Poincare –
불확실성(Uncertainty)과 무작위(Randomness)의 개념은 오랫동안 인류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변의 물리적·사회적 환경으로부터 매 순간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됩니다. 여러 방면에서 우연한 사건들이 우리에게 일어납니다. 때로는 재앙으로부터 고통을 받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자연의 불확실성에 인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물들은 결정적이지 않습니다. 괴테 (Gothe)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또한, 위대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Einstein)은 다음과 같이 믿었습니다.
일부 신학자들은, 신이 모든 일을 주관하기 때문에 신에게 있어서 무작위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또 다른 신학자들은 신 마저도 무작위한 사건들에 좌우된다고 말합니다.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는 그의 저서 “에피쿠러스의 정원The Garden of Epicurus”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철학자들은 인생에서 우연의 역할을 인정하였는데, 그들은 이 우연이 질서를 깨트린다고 생각하였으며 또한 그들의 이해 범주를 넘어선 것으로 치부하였습니다. 그들은 우연의 연구가능성이나 불확실성의 측 정가능성에 대하여는 인식하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인도의 철학자들은 우연에 대하여 생각할 아무런 필요를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생을 통해 인간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고대 인도 카르마의 가르침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활동들, 즉 대학에 들어가는 것, 직업을 선택하는 것, 결혼하는 것, 돈을 투자하는 것 등은 예측을 기초로 하여 이루어집니다. 미래는 아무리 많은 정보를 가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불확실한 것이기 때문에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어떠한 시스템도 있을 수 없습니다. 불확실한 상황과 의사결정시 나타나는 불가피한 오류로 인해, 인간은 점성술 같은 사이비과학에 빠지기도 하며, 예언가의 말에 현혹되기도 하고, 사이비종교나 주술의 희생자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플라우투스의 지혜에 의지하고자 합니다.
요즘은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우리의 성공이나 실패는 우리의 능력이나 노력보다도 우연한 기회로 설명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의 불확실성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불확실성은 물리학에서의 기본입자의 운동, 생물학에서의 유전자나 염색체의 운동, 스트레스와 긴장 속에 살아가는 개인들의 행동 등에서처럼 본래가 고유하게 존재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연과학이나 생물과학 또는 사회과학의 결정론적 법칙보다 확률적 법칙에 근거한 이론의 개발이 필요합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어떻게 의사결정을 해야 합니까?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거나 새로운 이론을 주장하기 위하여 관측된 자료를 어떻게 일반화하여야 합니까? 그 과정은 예술입니까, 기술입니까, 아니면 과학입니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한 노력은 단지 20세기 초에 불확실성을 수량화 하고자 시도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완전히 성공하였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성취된 업적들은 인류가 시도하는 모든 분야에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연구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자연에 대한 지식 및 인류복지의 발전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한 우리의 사고방식에 변화를 가져왔으며 자연의 비밀을 대담하게 파헤치게 됐는데, 이러한 것들은 과거에는 결정론에 대한 굳은 생각과 우연성을 다룰 능력의 부족으로 인하여 불가능했던 것들입니다. 이러한 발전의 자세한 내용과 이러한 아이디어가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를 다음 장에서 설명하겠습니다.
- /Robert Frost의 페르티낙스(pertinax)
//Let chaos storm!
//Let cloud shapes swarm!
//I wait for fo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