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계, 혼돈과 질서의 만남 ]
제 2장 불확실성 길들이기 : 통계학의 발전
.1.2 고대의 기록들
가장 오래된 통계 기록은 아마도 계산술이 완성되기 이전에 원시인들이 그들의 소 떼나 다른 소유물들을 계수하기 위하여 나무 위에 표시한 눈금일 것입니다. 인류가 독립적인 유랑생활을 청산하고 조직화된 공동사회를 이루었을 때 자료들을 수집하고 정보를 기록하는 필요성이 대두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각자의 재산을 한데 모아 적절히 활용해야 했으며, 미래의 필요성에 대비하여 계획도 수립해야 했습니다. 그 후 왕에 의하여 지배되는 왕국이 세워졌 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전세계의 모든 고대왕국의 통치자들은 왕국의 인적·물적 자원에 관한 세부자료를 수집하는 회계원들을 두고 있었습니다.
고대중국의 황제인 한(漢)고조 유방(劉邦)은 통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 나머지 재상으로 하여금 통계를 책임지도록 하였는데 이러한 전통은 중국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얼마나 많은 건장한 사람들을 징병할 수 있으며, 백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생필품이 필요한지를 파악하는 것은 그들의 큰 관심사였습니다. 그 외에도 재산이나 결혼에 관련된 법이 바뀔 때 못마땅해 할 소수민족들의 수는 얼마나 되고 그들은 얼마나 부유한지, 그들이 다스리는 지역과 이웃지방의 조세능력은 얼마나 되는지를 아는 것 등도 모두 그들의 관심사였습니다.
중국에는 하(夏)나라 때인 B.C. 2000년경에 인구조사를 실시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주(周)나라(B.C. 1111 – B.C. 211) 때는 통계업무를 전담하는 “쉬-수Shih-Su”(부기계원)라는 관직이 있었습니다. “쿠안 추Kuan Tzu”라는 책의 24장은 ‘질문Inquiry’이라는 제목인데 여기에는 국가통치에 관한 65가지 질문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땅과 집을 소유한 가구수가 얼 마나 되는가? 한 가정이 얼마만큼의 비축식량을 가지고 있는가? 홀아비와 과부, 고아, 불구자, 환자들은 몇 명이나 되는가?
구약성경 제4권 민수기(Numbers)편에는 B.C. 1500년경에 행해졌던 초기 인구조사가 언급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모세에게 이스라엘의 용사들을 집계하도록 지시하는 내용입니다.
센서스Census라는 말 자체는 세금을 의미하는 라틴어 Censere에서 유래하였 습니다. 로마의 인구조사는 제6대 황제인 세르비우스 툴리우스Servius Tullius (B.C. 578-534)에 의하여 그 틀이 갖추어졌습니다. 이러한 틀을 이용하여, 조세 징수와 전투에 동원할 수 있는 숫자를 결정할 목적으로, Censors라 불리는 로마관리들이 인구와 재산을 5년 간격으로 집계하였습니다.
B.C. 5년에는 케자르 아우구스투스Caesar Augustus황제가 인구조사의 범위를 전 로마제국으로 확 대하였습니다. 로마의 마지막 정규 인구조사는 A.D.74년에 실시되었습니다. 로마제국 붕괴 이후 수세기 동안 서구에서 실시된 인구조사 기록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정규적 인구조사는 17세기에 가서야 시작되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오늘날 행정기록Administrative records 혹은 공식통계Official statistics라 불리는 매우 정교한 시스템이 인도에서는 이미 B.C. 300년 이전에 개발되었다는 것입니다. B.C. 321-300년경에 출판된 카우틸리아 Kautilya가 지은 “아르타사스트라Arthasastra”라는 책에는(제5장 2.3절 참조), 자료의 수집과 기록에 관한 방법이 상세히 기재되어 있습니다. 고파Gopa라는 마을 회계원은 사람, 토지의 용도, 농산물 등에 관한 모든 기록들을 보존했습니다. “아르타사스트라”에 기록된 그의 임무는 다음과 같습니다.
모하메드Mohammedan 통치시절의 인도에서는 공식통계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자료로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앤-이-아크바리Ain-i-Akbari인데, 이것은 아크바Akbar 황제 시절의 인도 행정통계 조사로서 재상 아불파즐Abul Fazl이 1596-1597년에 완성하였습니다. 이 자료에는 대제국에 관한 많은 정보들이 기재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기록도 있습니다.
이 많은 자료들을 왜 그리고 어떻게 정리하였는지, 어떤 행정적 도구들이 사용 되었는지, 자료의 완결성과 정확성을 기하기 위하여 어떤 예방책이 강구되었는지, 그리고 이 자료들이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